≪생활동반자법, 차근차근 토론합시다≫
지난 4월 26일, 역대 국회 최초로
저는 기본소득당의 당론인 생활동반자법을 발의했습니다.
지난 2주 동안 응원과 지지를 보내주신 많은 국민들과,
동시에 다양한 고민과 우려를 표해주신 분들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생활동반자법이 발의된 지도 2주가 지났습니다.
숙려기간을 고려할 때, 다음주부터는 본격적으로
상임위에서 심의가 진행될 것이라 기대합니다.
앞으로 숙의 과정에서 많은 분들의 다양한 의견이
합리적으로 토론되고 또한 합의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만 법률안의 내용과 관계없거나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악의적인 왜곡과 추측은 논의 자체를
위축시키거나 혹은 좌초시킬 우려가 있기에
생활동반자법을 왜 발의했는지, 그리고 무엇을 목표로 하는지
다시 한 번 법률안을 발의한 제 입장을 정리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추후에도 차근차근 토론해 나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먼저 생활동반자법은 국가의 가족지원정책을 확대하는 제도입니다.
전통적 가족은 이미 해체되었습니다.
전체 가구 중 3분의 1이 1인 가구입니다.
비친족가구 수만 5년 전보다 2배 늘어 100만을 넘어섰습니다.
황혼 동거 가구, 친구 가족, 비혼·사실혼 가구, 동성 동거 가구
모두 우리 이웃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이미 존재하고 또한 부정할 수 없는 가족의 모습들입니다.
그러나 이들 가족을 지원하고 보호하는 제도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사실혼·동거 가구 28.3%가 정부 지원 혜택에서
제한을 겪었다고 답하고 있습니다.
현대 복지제도에서 가족이 국가 정책의 단위이자
통로인 점을 감안하면, 변화한 가족의 양태를
정책적으로 수용하지 않아서 생기는
정책 단절과 비효율성은 앞으로 점점 심각해질 것입니다.
생활동반자법은 이미 존재하는 이들 가족을
법과 제도의 틀 안에서 보호함으로써,
가족지원정책을 포괄적으로 확대시키는 제도입니다.
가족이라는 전달체를 활용해
국가의 사회보험, 공공부조, 사회서비스를
더 많은 국민에게 보장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생활동반자법은 협소한 가족 개념으로 인해
효과적으로 배분되지 않던 국가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할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혼인이나 혈연 외 가족을 현실에 맞게 조정하고,
가족다양성을 포용하는 가족 정책이 안착될수록
국가가 활용할 수 있는 정책 수단도 늘어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가족을 해체하고 있는 건 현실에 기반한
다양한 동반자적 관계를 제도적으로 방치하는
낡고 경직된 법과 제도 때문이지,
다양한 모습의 가족을 보호하려는 입법 때문이 아닙니다.
사실 우리나라처럼 민법에 가족을 정의한
외국 입법례도 거의 없습니다.
많은 분들이 변하지 않을 개념이라 여기는
현행 법률의 가족 범위 규정 또한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인 결과입니다.
2005년 호주제 폐지의 부산물로 ‘호주’가 빠진 공백을
‘혼인과 혈연’으로 대체한 인위적 규정이 바로 지금의 가족 규정입니다. 즉 가족 규정은 사회적 합의로서 꾸준히 바뀌어왔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지금 이 시대에 맞추어
가족에 관한 규정을 바꾸자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생활동반자법은 국민의 당연한 권리입니다.
생활동반자법은 누구든 원하는 사람과 가족을 이룰 권리를
보장하는 법입니다.
그렇기에 생활동반자관계는 반드시 애정 관계에 의할 필요도 없고,
성별을 구분할 이유도 없습니다.
가족으로서 주어지는 친밀함과 돌봄, 생활의 안정성이
성적 지향에 따라 우월해진다는 근거도 없습니다.
생활동반자법은 개인과 개인의 상호 합의에 따른 법적 결합입니다.
생계와 주거를 공유하고 서로를 신뢰하며 기꺼이 돌보고 부양하겠다는 서로의 약속은 법적 효력이 있는 권리와 의무를 발생시킵니다.
생활동반자관계라 하여 당사자가 이를 가볍게 여길 거라는 추측은
아무런 근거가 없습니다.
재산 분할이나 주택 청약을 노리고
생활동반자법이 남용될 수 있다는 발상 또한 악의적일 뿐입니다.
그와 같은 우려는 기존의 가족 제도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지 않습니까?
이는 생활동반자법 자체에 대한 불신이라기보단
상호신뢰에 따른 법적 계약을 기초로 한 법률적 질서,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한 정부 정책 운영을
원천적으로 부정하는 주장에 가깝습니다.
더군다나
가족이 국민연금, 고용보험 등에 따른 연금 수급자가 될 수 있고,
건강보험 피부양자가 될 수 있는 것,
가족이 출산을 하거나 돌봄이 필요할 때
출산휴가와 돌봄휴가를 사용할 수 있는 것,
가족이 중대한 의료결정을 하거나,
장례를 치를 때 상주가 되도록 하는 것,
가족이 함께 살기 위해 주거 지원의 대상이 되는 것은
너무나도 기본권적인 사회보장에 불과합니다.
차별이라는 말을 다시 반복하지 않더라도,
누군가의 고정관념 때문에 가족을 이룰 권리라는
어찌보면 가장 보수적인, 그리고 기본적인 권리가
침해받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생활동반자법은 출산율을 높일
정책 기반을 마련합니다.
세상 모든 가족이 존중받고 가족 형태에 따른 차별이 사라진다면
출산율은 저절로 늘어나게 될 것입니다.
어떤 가족에서 태어난 아동이더라도 똑같이 존중하는 것,
누구든 기꺼이 돌보고 키우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최선을 다해 법이 보호하고 지원하는 것이야말로
저출생 대책의 첫 단추입니다.
비혼 출산 비중이 높을수록 출산율이 높게 나타나는 건
통계에 근거한 사실입니다.
이미 가족의 의미와 형태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기에
당연한 현실입니다.
대부분의 OECD 회원국에서도 혼인 외 출산은 출산율을 유지하는 핵심 요인입니다. 2020년 기준 OECD 주요국 혼외자 출산율 평균은 꾸준히 늘어 41.9%에 달합니다.
반대로 우리나라는 2.5%로 최하위 수준입니다.
우리나라 국민 10명 중 7명이
혼인이나 혈연 관계가 아니어도 생계와 주거를 공유한다면
가족이 될 수 있다고 보는 것과도 대조적입니다.
법률혼만을 유일한 가족 형태로 보는 법과 제도가
변화한 현실을 따라가고 있지 못한 탓입니다.
생활동반자제도는 혼인 외 가족에서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이들을 제도적으로 보호하고,
비혼·사실혼 출산의 법적 차별을 해소해
부당한 사회적 인식을 변화시킬 것입니다.
프랑스의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한때 1.65명까지 급감했던 프랑스의 합계출산율은 생활동반자제도가 도입된 2000년 이후 반등하면서 현재 1.80명에 이릅니다.
이 기간 혼외출산 비율은 36.3%에서 62.2%까지 증가했습니다.
다양한 가족 형태에 대한 포용적 사회문화를 법·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이 저출생 대책으로 필수적이라는 것은 저 혼자만의 주장이 아닙니다. 국제사회의 저출생 대책에 이미 반영되어 있는 엄연한 세계적 흐름입니다.
생활동반자제도로 가족이 해체되어 저출생 문제가 심화된다거나,
비혼 출산의 제도적 보호와 출산율과의 상관 관계를 부정하는 일부 주장은 통계적으로도, 실증적으로도 입증되지 않는 가짜뉴스에 불과합니다.
생활동반자법 발의 이후 우리 사회는 어느 때보다
가족의 변화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하고 있습니다.
지난 2월,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께서도
“생활동반자제도 도입을 본격적으로 논의할 때”라고
밝혀주셨습니다.
정의당, 진보당에서도 대선 후보의 공약으로
생활동반자제도의 필요성을 제시해오셨고,
법안 또한 함께 발의해주셨습니다.
국회에 처음으로 등장한지 9년이 지났지만
아직 이렇다 할 논의조차 이뤄지지 못한 생활동반자법,
이제는 보다 본격적으로 그리고 미래지향적으로 토론해야 합니다.
국회의 저출생·인구위기에 대응을 위한 논의에도
가족 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합니다.
기본소득당은 앞으로도 생활동반자법 제정을 비롯해
가족 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을 위해 다양한 정책 제안에 앞장서겠습니다.
그리고 생활동반자법 제정을 현실화할 수 있는
원내 협의 또한 적극적으로 추진하겠습니다.
저는 이미 생활동반자법 제정을 위한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패스트 국회입니다.
21대 국회 임기가 종료되기 1년 전인 지금,
반드시 완수해야 할 개혁입법 과제를 신속처리안건으로 정하자는 것입니다.
생활동반자제도 도입은 수 년간 시민사회가 꾸준히 요구해왔고
논의해온 개혁 과제이기도 합니다.
또한 합리적인 수정의견은 국회 안팎의 숙의 과정을 통해
충분히 합의해나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진보당의 화답을 기대합니다.
마지막으로 세계가정의날인 오는 5월 15일,
여러 전문가들과 생활동반자법 제정을 위한
국회토론회를 개최합니다.
생활동반자법을 더욱 구체적이고
선명하게 논의하는 장이 되리라 기대합니다.
생활동반자법에 관심을 보여주신 국민 여러분과
많은 언론 관계자 여러분의 적극적인 참여와 취재를 부탁드립니다.
2023년 5월 9일
기본소득당 상임대표
용 혜 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