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ㅣ 0. 화물연대 파업이 종료됐다. 나는 막연하게 기사들이 이기길 응원했는데 생업이 바쁘다보니 일일이 이슈를 따라가질 못했다. 그래서 지금 이 상황이 이긴건지, 진건지, 비긴건지 궁금하다. 왜 이걸 써주는 기자가 보이질 않는건가 모르겠다.
1. 이번 파업 국면에서 나오는 기사들을 보고 좀 당황했다. 보수성향 매체나 경제지는 뭐 성격상 화주 편을 든다고 치자. 진보매체들이 쓰는 기사를 읽다보면 내 입장의 기본이 되는 사실 확인 부분에서 헷갈리는 게 한 두번이 아니었다.
대표적인게 화물 기사들의 순수입에 대한 부분이다. 많은 기사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화물 기사들의 순수입은 월 300~400만원 수준이다. 그런데 진보 매체 기자들은 여기서 또 차량 할부금을 빼더라. 그러면 한달에 100만원 남짓도 못 가져가는 기사들이 수두룩하단다.
이런 대목을 보면 나는 자동적으로 머릿속에 물음표가 그려지는 사람이다. 응? 요즘 그냥 동네에서 배달을 해도 직업적으로 하면 200만원 이상은 벌텐데 100만원 벌려고 하루에 한시간씩 쪽잠을 자면서 목숨을 걸고 화물차를 몬다고?
2. 1억 5000만원짜리 화물차를 구입해서 할부금리 5%로 60개월 할부를 걸면 매달 283만원을 내야 한다. ㅇㅇ 그럼 순수입이 100만원 이하로 내려갈수도 있겠네. 그럼 이런 기사들이 얼마나 '수두룩'할까. 난 모른다. 근데 기자님들은 알아야하지 않을까. 이런 케이스가 얼마나 많은지 알아야 사회가 화물기사 처우에 대한 대응 속도나 강도를 계산할 수 있잖나.
한국자동차해체재활용업협회가 계산한 '연도별 평균 폐차 주기'를 보면, 화물차의 경우 2020년 기준 평균 폐차 주기는 16.8년이었다. 60개월 할부로 화물차를 한 대 사서(요즘은 120개월 할부도 있더라) 17년 정도는 굴린다. 5년 할부가 끝나면 12년치 사용 가치를 받고 처분이 가능하다. 그럼 나는 이게 과연 순수입에서 빼야 하는 비용인지, 아니면 일종의 투자인지 좀 헷갈리는데 모든 진보지가 이걸 비용으로 계산하는 걸 보고 좀 황당했다. 뭐가 뭔지 잘 모르겠으니까 입장을 드러내기도 쉽지 않다. 독자가 모르고 기자가 아는 게 있다면 응당 기사에 써줘야하지 않을까 싶다.
3. 그래도 궁금하니까 또 찾아본다. 한국교통연구원이 일반화물차 운전자 3275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내놓은 '2021 화물운송시장동향 연간보고서'를 보면 작년 기준 일반화물차 운전자의 월평균 매출액은 평균 1005만원으로 전년 대비 7.0%(66만원) 증가했다고 써있다.
여기서 비용은 ▲유류비(유가보조금 환급액 반영) 279만1000원 ▲차량 할부금 66만5000원 ▲통행료 51만6000원 ▲수리비와 기타지출액 49만8000원 ▲주선료 37만7000원 등이다. 이걸 제한 월평균 순수입은 378만원이었다. 그러니까 차량 할부금을 빼고도 월 378만원이 찍히는 것이다. 그래. 그래도 이정도가 되니까 일을 하는 거겠지. 문제는 이렇게 벌려면 상당히 장시간 노동해야 한다는 점일 것이다.
4. 한국 사회에서 장시간 저임금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게 화물기사들 뿐만이 아니다. 다만 화물의 경우에는 여기에 안전이라는 중차대한 문제가 더해진다. 잠 못자고 도로를 통해 화물을 나르는 기사들은 사고를 내기 쉽고, 이는 다른 시민들에게 치명적인 손해 혹은 피해로 돌아오는 것이다. 이들의 실수입을 보장하고 과다 노동을 줄이는 제도 이름이 '안전'운임제인 이유가 거기에 있다.
기사를 보면서 가장 짜증나는 게 뭐냐면. 등장하는 사람들을 불쌍하게 만드는거다. 지금 이렇게 가면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일반 운전자들의 안전이 심각하게 위협받는다는 얘기를 해야 안전운임제를 확대, 연장할 논리가 만들어지는데 기자들이 화물 기사들을 불쌍한 사람으로 그려버린다. 이러면 파업 안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응 불쌍한 사람들이네. 잘 되면 좋겠다. 근데 점심은 뭐먹지?"식으로 대화가 흐른다. 시민이 이걸 자기 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5. 개인적으로 안전운임제 수준은 더 올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단가를 올려주는 대신, 반드시 하루에 일할 수 있는 시간을 강력하게 제한해야 한다. 통계를 보니 안전운임제를 시행한 후에도 일하는 시간 자체는 그다지 줄지 않았더라. 자연스러운 일이다. 나 같아도 탈출구가 안 보이는 고강도 노동을 하고 있는데 '앞으로 3년은 시급을 올려줄게'라고 하면 그 기간동안 한몫 잡아야지 하는 마음으로 일 더하려고 하겠다.
그리고 이 건에 대해 논평하는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게 본인의 사회적 계급을 드러내는 것 같다. 급여 수준이 적다는 취지로 '기사들이 월 300~400만원 번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은데, 미묘하게 거슬리는 측면이 있다. 월 삼사백인데 어쩌라고. 2021년 한국 노동자 월평균 임금은 327만1000원이다. 나는 왜 이 파업이 진보 성향을 가지지 않은 시민들에게 그다지 열광적인 지지를 못 받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나만 그런가.